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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1월 8일 (금) 오전 10:57

 

소설 "흙"은 이광수 작가의 대표작 중 하나로, 한국 현대 문학의 중요한 작품으로 자리 잡고 있어요. 이 글에서는 이 소설에 대해 자세히 분석해 보려고 해요.

 

이광수의 "흙"은 농촌 계몽 운동을 주제로 한 소설로, 1930년대 경성부와 살여울 마을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요. 이 작품은 당대 농민들의 고통과 사회적 문제를 다루면서, 독자들에게 깊은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한 점이 특징이에요. 특히, 이 작품은 '동아일보'에 연재되면서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았던 작품이에요.

작가 이광수에 대한 배경

이광수는 1892년에 태어나 1950년에 세상을 떠난 한국의 소설가이자 시인으로, 한국 문학사에서 중요한 인물 중 한 명이에요. 그는 근대 한국 문학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특히 농촌을 주제로 한 작품들을 많이 남겼어요. 이 작품 또한 그의 농촌 계몽 운동에 대한 관심이 반영된 결과라고 할 수 있어요.

소설의 주요 테마와 메시지

"흙"은 이광수의 대표작으로, 1936년에 발표된 소설입니다. 이 소설은 한국 현대 소설의 代表작 중 하나로 알려져 있습니다. 소설은 한국 광복 직후의 상황을 배경으로하며, 주인공 조타사의 고향을 떠나 도시로 가서 항부에서의 삶을 살지만 불공평한 사회 속에서 삶을 찾는 그의 이야기입니다.

 

'흙'은 삼형제의 운명, 또한 인간이 만들어 가는 사회의 비극성에 대한 분노를 담고 있습니다. "흙"은 농촌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그 속에서 인간의 삶과 고난을 다뤄요. 특히, 계급 간의 갈등과 농민의 고난을 통해 사회적 불평등을 드러내고, 이를 통해 독자에게 공감과 성찰을 유도해요. 이광수는 주인공의 내면 갈등을 통해, 농촌의 삶이 단순한 생존을 넘어서는 복잡한 감정을 지닌 존재임을 명확히 하고 있어요.

 

이광수의 장편소설 『흙』은 한국 근대소설사에서 농촌계몽운동 소설의 장을 연 작품으로, 주인공 허숭의 협동조합운동과 유정근의 식산조합의 충돌, 식산조합에 대한 협동조합의 승리를 그리면서, 도산 안창호가 모델이 된 듯한 한민교 선생의 농촌진흥운동의 시작을 여는 소설이다

주요 등장인물 분석 

작품 속 주인공은 허숭이라는 지식인으로, 농촌을 떠나 도시에서 성공을 거두지만 결국 농촌으로 돌아가 농민들을 돕기로 결심해요. 그의 여정은 단순한 귀향이 아닌, 자신의 정체성과 사회적 책임을 찾으려는 과정이에요. 다른 등장인물들도 각기 다른 삶의 배경을 지니고 있으며, 그를 통해 다양한 사회적 상황을 조명하고 있어요.

 

인물 분석 중요한 인물로는 허숭과 한민교가 있으며, 각각 농촌 사회의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그려집니다. 허숭은 스승 한민교의 지도를 받아 농촌 계몽의 길로 나아갑니다. 

 

소설의 구성과 서사 구조

"흙"의 구성은 비교적 단순하지만, 각 장면이 지닌 함의는 깊어요. 서사는 전통적인 서사 구조를 따르며, 각 인물의 갈등과 그 해결 과정을 통해 독자가 자연스럽게 작품에 몰입할 수 있게 해요. 이 과정에서 이광수는 독자들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져요. ‘우리는 어디에 뿌리를 두고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그중 하나에요.

작품의 사회적 배경과 역사적 맥락

이 작품이 발표된 시기는 한국이 일제 강점기에 접어들었던 시기로, 농촌의 현실은 매우 암울했어요. 이광수는 이러한 사회적 배경을 바탕으로, 농민들의 고난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며,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자 했어요. "흙"은 단순한 소설이 아니라, 그 시대의 사회적 고발이기도 해요.

 

독후감 및 개인적인 감상

이 작품을 읽고 나서는 여러 가지 감정이 교차했어요. 농촌에서의 삶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어요. 허숭이 농촌으로 돌아가는 선택은 지금의 우리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주는 것 같아요. 우리가 잊고 있는 사회적 책임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든 작품이었어요.

이미지 출처

관련 자료 및 추천 링크

더 많은 정보를 원하신다면, 아래의 링크를 참고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이처럼 "흙"은 단순한 소설 이상의 깊은 의미를 지닌 작품이에요. 많은 분들이 이 작품을 읽고, 그 속에서 다양한 감정을 느끼길 바라요.


민족개조론


끝나지 않은 이광수의 친일행적 논란

평론가 김우종의 ‘이광수를 위한 변명’

  • 수정 2019-10-19 11:20
  • 등록 2007-10-02 11:39

"그의 생애는 11세 어린 나이에 동학교도로서 일본 침략 세력에 맞서며 항일 민족주의자로서 35-36년을 살고 47세 경부터 일제 패망 때까지 약 6년 간을 친일로 살다 간 양면의 복합적 결산서에 의해서 평가돼야 한다."


육당 최남선과 함께 일제 강점기 대표적 친일문인으로 꼽히는 춘원 이광수. 한국 근대문학을 개척한 선구자였음에도 그의 이름 앞에는 항상 '친일파'라는 수식어가 먼저 붙어왔다.


'민족개조론'을 발표해 같은 민족을 열등하다고 몰아붙이며 각종 강연을 통해 젊은이들에게 전쟁에 나가라고 종용했던 그를 위해 어떤 변명을 해줄 수 있을까.


원로 문학평론가 김우종씨는 문학계간지 '휴먼메신저' 가을호에 기고한 소논문 '우리가 사랑하다 버린 선구자'에서 "친일에 대한 이광수의 업보는 남들에 비해 너무 많은 대가를 치렀다"며 "수십년 간에 걸친 그의 항일운동과 문학적 업적을 제대로 평가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우선 해방 정국에서 반민족행위 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가 이광수를 친일혐의로 구속 투옥한 것에 대해 "친일인사 다수 중에서 특히 죄질이 나빴던 문인은 빠지고 이광수 등 선배 문인만 기소한 것은 잘못이며 독립운동가에 대한 참작 없이 구속투옥에 의한 재판을 진행한 것은 결코 공정한 처사가 아니었다"며 "힘 없는 사람들만 처벌했다는 점에서 큰 과오가 있으며 법이 대중적 인기 논리에 편승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씨는 이광수의 친일 행위에 대해서도 조목조목 반박했다.


이광수가 친일 활동을 시작한 시점으로 간주되는 '개벽'에 발표된 '민족개조론'에 대해 김씨는 "(거짓말 잘하고 남을 속이고 하는) 민족성을 개량하고 조선민족의 내실을 철저히 다지자고 주장한 것이었다"고 강변하며 "이것을 일제에게 식민 통치의 구실을 주었다는 것은 무리한 주장"이라고 말했다.


또 "'민족개조론'이 발표되기 넉달 전 베이징에서 안창호를 만나 흥사단 운동에 관해 협의하고 1923년에 함께 조직한 것이 수양동맹회였다"며 "민족개조론의 내용과 안창호의 준비론을 비교해보면 이 논문은 안창호의 독립운동노선과 일치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상하이(上海) 임시정부에서 활동하던 이광수의 갑작스런 귀국도 인간적 차원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당시 이광수는 일제 총독부의 밀사로 의심받던 아내 허영숙을 만난 뒤 돌연 귀국, 변절자로 의심받았다.


김씨는 "이광수에게 있어 허영숙은 아내 이상의 존재였다. 이광수가 일본에서 폐결핵에 걸려 사경을 헤맬 때 의사였던 허영숙이 살려주지 않았다면 당시 집필 중이던 '무정'도 완성되지 못했을 것"이라며 "그의 개인적 환경을 일체 무시하고 비난만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김씨는 또 "조선문인협회가 일제 총독부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일본인까지 회원으로 참여해 그들의 지휘 감독 하에 있었던 것을 감안할 때 이광수의 친일은 자발적인 것으로 단정하기 어렵다"고 부연했다.


김씨는 이광수가 어린 시절 동학운동에 적극 참여하고, 일본 유학생 시절 3.1운동을 촉발하는 계기가 된 '2.8독립선언문'을 주도적으로 작성했다는 점 등을 거론하며 "수십년 간에 걸친 항일투쟁의 노력과 문학적 업적은 친일행적을 상쇄하는 바가 있다"고 거듭 변호했다.


이에 대해 김재용 원광대 국문과 교수는 "1938년 중일전쟁이 터지면서 이광수는 우리 민족이 살 수 있는 길은 '독립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모두 일본국민이 될 것을 주장했다"며 "1940년에는 자신의 이름마저도 일본식 이름으로 바꿨다. 그의 행적은 모두 기록으로 남아있다"고 반박했다.


김 교수는 특히 이광수의 문학적 성과와 항일투쟁의 노력이 친일 행적을 상쇄한다는 김씨의 주장에 대해서도 "당시 이광수보다 지명도가 높았던 홍명희는 일제의 종용에 결코 굴하지 않았다"며 "공과(功過)를 다 같이 다뤄야지 공 때문에 과가 지워지거나 과 때문에 공이 지워지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서울=연합뉴스)


이광수의 '친일 변명문'

"어떤 이는 내가 몸에 중병이 있기 때문에 다시 감옥에 갈 것이 두려워서 친일파의 행동을 하였다 하나 그것은 당치 아니한 말이다. 나는 동우회 사건으로 한바탕 치를 것을 치렀기 때문에 가만히만 있으면 다시 잡혀갈 걱정은 없었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내가 일본 관헌의 압박에 못 이기어 그리했다고 하나 이것은 나를 무척 동정하여서 하는 말인 듯하나 나는 그렇게 비겁한 사람은 아니다. 일본 관헌의 압박이나 유혹은 학생시대로부터 받아왔다.

 

그러면 무엇 때문에 나는 조그맣게라도 가지고 있던 명예를 버리고 친일파의 누명을 쓰고 나섰는가? 어리석을지는 모르나 내게는 나로서의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것을 설명하자는 것이 이 책이 목적이다. 그것은 한 마디로 말하면 나를 희생해서 다만 몇 사람이라도 동포를 핍박에서 건지자는 것이었다.

 

나는 더 젊어서는 뜻이 커서 내가 능히 민족을 온통으로 건지리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인도의 간디를 기약한 것이 내가 서른 살에 상해에서 돌아올 때의 꿈이었다. 그러나 나는 점점 내가 몇푼어치도 못 되는 것을 깨달아 큰 꿈은 글로 남기고 몸으로는 민족의 조그마한 이익을 구하는 데나 쓰리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비록 한 중생이라도 네 목숨을 던져 구할 수 있거든 다행이라 알라는 불교의 교훈이 내 마음에 맞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내 이익을 위해 친일행동을 한 일은 없다. 벼슬이나 이권이나 내 몸의 안전을 위해서 한 일은 없다. 어리석은 나는 그것도 한 민족을 위하는 일로 알고 한 것이었다.  

 

(중략)내가 처음 친일파의 패를 차고 나섰을 때는 나는 스스로 다른 친일파와는 다르다고 자처하여 속으로 그들을 멸시하였다. 그들은 일본인에 아첨하여서 제 지위나 얻고 이익이나 도모하는 자들이라고 단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과 오래 여러번 만나는 동안에 나는 그들도 꼭 같은 조선민족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은 결코 일본인이 된 사람들도 아니도, 조선인보다도 일본인을 위하는 이들도 아니었다. 도리어 민족의식에 있어서는 친일파 소리를 안 듣는 사람보다 강한 편이 많았으니 그들은 날마다 일본인과 접촉하기 때문에 가슴 아픈 차별대우도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러고 우리 민족의 독립을 기뻐하고 이 나라에 충성을 다하려는 정신에 있어서도 다른 동포보다 다름이 없다고 믿는다.

 

이런 까닭으로 나는 "친일파의 변"을 이 책 끝에 붙였다."

 


 

 

 

태그

#흙 #이광수 #한국소설 #농촌계몽 #문학리뷰 #소설추천 #한국문학 #독후감 #문학분석

이런 자료를 참고 했어요.

[1] 나무위키 - 흙(소설) (https://namu.wiki/w/%ED%9D%99(%EC%86%8C%EC%84%A4))

[2] NAVER - 흙(이광수-1932) 줄거리 및 핵심내용 요약 정리 QQQ (https://blog.naver.com/mothra/50072231363?viewType=pc)

[3] 네이버 블로그 - 농촌 계몽 소설 -이광수의 「흙」 - 네이버 블로그 (https://m.blog.naver.com/hongpoet/221504850039)

[4] 한국문화홍보서비스 - 코리아넷뉴스 - 이광수, 한국 그리고 '흙' (https://www.kocis.go.kr/koreanet/view.do?seq=5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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